‘일곱’은 인생과 아주 밀착되어 있는 수입니다. 우선 세월의 흐름이 일곱 날을 단위로 하여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도 일곱이라는 낱말이 무려 277회나 등장합니다. 맨 앞 창세기에 37회, 맨 뒤 요한계시록에 54회 등장합니다. 믿는 자가 거두는 최선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일 것입니다. 이 열매는 생명이요,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이들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입니다. 이것은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입니다. 이것은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를 자세히 묵상하다가 일곱째 열매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충성’입니다. 충성은, ‘①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精誠) ②나라와 임금 등에게 몸과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이라고 국어사전에서 설명합니다. 충성의 다른 말은 성실입니다. 충성이 성실입니다. 성실은, ‘태도나 언행 등이 정성스럽고 참됨, 혹은 착하고 거짓이 없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성(精誠)에는 성(誠)이 있습니다. 성의(誠意), 지성(至誠), 충성(忠誠), 효성(孝誠), 이것들은 다 정성을 깃든다는 말씀입니다. 다 성실(誠實)과 연관됩니다. 이 단어들에는 모두 ‘성’이 공통으로 들어갑니다. ‘성’은 한문으로 誠이라고 씁니다. 誠을 잘 살펴보면 바로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자’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성’은 ‘말씀을 지킨다. 말씀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충성, 성실을 성령의 열매 가운데 일곱째에다 두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말씀’을 말씀대로 이루는 열매가 충성이요, 성실이기 때문입니다.

 

  ‘성실(충성)이 재능을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짝이는 재능도 꾸준한 성실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바른 방향이 우선 중요합니다. 방향만 올바를 때는 성실하게 가기만 하면 승리와 성공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방향은 맞는데 당장 열매가 없으면 우리는 낙심하곤 합니다. 낙심은 우리의 노력을 중단하게 하지만 성실은 중단 없이 계속하게 합니다. 성실하면 기회가 옵니다. 성실하면 쓰임 받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도 항상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성실은 길을 열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승리로 이끕니다. 재능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실성만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요셉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게 됩니다. 요셉이 도착했을 때 형들은 세겜에 없었습니다. 요셉에게 성실성이 없었다면 그는 도단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고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성실성을 보시고 장차 애굽의 총리로 쓰임 받을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다윗도 성실성 때문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전쟁터에 있는 세 아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기 위해 다윗을 보냈습니다. 일을 맡길 때는 성실성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다윗의 성실성이 심부름을 가능하게 했고, 그 심부름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승리의 기회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성실성은 항상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힘이 되곤 합니다.

 

  성실의 첫걸음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마 25:21).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작게 여깁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고 큰 것만 바라봅니다. 모든 실패의 원인은 작은 것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함에 있습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 작은 것일 수도, 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성실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실한 믿음생활을 실천할 좋은 방법을 하나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통로이며 성도로서의 가장 값지고 귀한 특권입니다. 윌슨은 “하나님은, 우리의 정교한 프로그램과 탁월한 재능은 지나치실 수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의 성실한 모습은 결코 지나치시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응답받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저 멀리까지 내다보지 못하고 바로 눈앞의 것만 가지고 판단해 버리지 않습니까. 가장 귀중하고 성실한 방법인 기도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신세 한탄으로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편 기자는 하루 일곱 번씩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시 119:164). 우리도 하루 일곱 번씩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루 세 차례의 식사기도, 잠자리에서 깨어난 직후 기도, 잠자리에 들기 직전 기도, 그리고 오전에 한 차례, 오후에 한 차례, 모두 일곱 차례의 기도입니다. 성령의 일곱 번째 열매가 충성이요, 성실입니다. 오늘부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작은 일에 감사하면서 짧게라도 일곱 번씩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성실성을 증명해보십시오. 당신의 성실한 기도가 당신을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