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잠에서 깨어나면 저 멀리서 소리가 들립니다. 지나가는 차 소리, 이웃집 멍멍이 소리, 옥상 밑에 깃들어 사는 비둘기 가족 소리, 새벽기도 하러 가는 성도들의 발걸음 소리… 생명이 있는 곳에는 움직임이 있으며 소리가 있습니다. 대자연을 바라보면 항상 살아 움직이는 소리가 있습니다. 벌레소리가 있으며, 새싹이 움트는 소리가 있으며,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있으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있습니다. 소리는 생명의 표현이며 움직임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소리를 싫어합니다. 지쳐있는 어른들도 소리를 싫어합니다. 떠드는 아이들을 나무라며 ‘저리 가서 놀아라’고 합니다. ‘좀 조용하게 살 수 없을까?’ 생각합니다. 아픈 환자들은 소리를 싫어합니다. 지난번 수술 때문에 같은 병실에 누워있던 환우 증에는 유독 옆 사람의 작은 속삭임 소리도 귀찮아하며 신경질 부리더니만 다음날 아침에 중환자실로 옮겼고, 그 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치고 늙고 병들면 삶의 의욕과 활기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들은 힘이 들어 더는 소리를 흡수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안에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이 강하고 정신이 강한 사람은 그 안에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비어있습니다. 병약하면 왜 시끄러운 것을 싫어할까요? 그것은 그들의 생명이 이제 거의 시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왜 시끄러운 것을 좋아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생명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죽음이 아니면 죽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차피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겠지만 구태여 빨리 죽음으로 나아갈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요? 좀 더 삶과 건강을 유지하고 생명을 유지하고 싶으면 그는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고 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특히 입의 소리를 사용하는 기쁨을 같이 누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사람 안에 공간이 있다는 것은 소리를 넣을 수 있는 특별한 장기(臟器)가 따로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영혼의 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리는 물질계에 속하면서도 또한 영혼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소리는 영혼과 육체를 서로 연결해주는 매개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혼이 강건하고 충만한 사람은 소리의 공간이 넓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연약한 사람은 소리의 공간이 작습니다. 그러한 이들은 소리를 잘 견디지 못합니다. 소리의 용량이 작은 사람은 자기가 과거에 먼저 경험한 소리만으로 자기 속을 가득 채워 버립니다. 그리하여 나중의 다른 소리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소리, 자기가 좋아하는 소리에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새로운 소리가 들어오려고 하면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밤을 지새우며 들판의 밤이슬과 하얀 서리를 맞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헤어짐의 시간이 아쉬웠던 연애시절의 추억이 당신에게도 있습니까? 아름답고 행복한 관계는 즐거운 소리와 하모니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듣습니다. 거기에는 웃음이 있고 화목이 있습니다. 즐거운 관계가 있습니다. 부부라면 행복한 부부요 연인이라면 행복한 연인입니다. 성직자와 신도 사이라면 은총으로 가득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나고 같이 있지만 서로 말이 없고 대화가 없고 공동관심사가 없이 죽음과 같은 침묵이 흐른다면 이상적인 관계라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 없이 영혼만 가지고 있다면 영혼의 대화, 침묵의 대화로도 충분하겠지만 몸이 있고 입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요 축복입니다. 학창시절에 나는 하루종일 말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할 말이 저렇게 많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에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자마자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성삼아, 너 금방 말한 거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짝꿍과 말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이때 나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시절로 기억됩니다. 꿈도 이상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할 말도 없었습니다. 이후로 나는 부지런히 말하고 듣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강한 사람이 되려면 소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눌리고 약하고 상처받는 삶을 마감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소리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역시 소리입니다. 내게서 소리가 나가는 만큼 소리의 공간이 확장됩니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을 때 자주 기합소리를 지르고 구령을 외칠 때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소리를 지르는 것을 통하여 그 사람 안에 소리의 역량이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작은 소리에 놀라며 남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소리 공간이 넓혀질 때 당신도 강해지며 마음도 확장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소리를 내는 것이 우습게 여겨지고 유치하게 여겨진다면 당신은 지금 영적으로 많이 지치고 망가져 있는 상태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회복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당신은 소리와 활기를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생명의 충만함을 사모하십시오. 움직이는 모든 것을 기뻐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좋아하고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을 즐거워하십시오. 당신의 소리가 풍성해질 때 당신의 삶도 영적 생명도 환희와 생기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소리는 곧 생명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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