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내년 경기는 더 나쁠 수 있다고 합니다. 주요 몇몇 나라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한국도 성장률을 계속해서 낮춰 잡고 있습니다. 뉴스에서 연일 끊이지 않고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 냅니다. 그러다 보니 직접 경제활동을 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가정주부들까지도 덩달아 왠지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불안함 속에서도 소망을 붙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불안하고 어렵다고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내왔던 ‘광야’만 하겠습니까?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과 음식을 구할 수 없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광야에서도 40년 동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셨습니다. 당시 그들은 평생 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운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하는 ‘만나’를 체험합니다. 날마다 경이롭고 놀라운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만나라는 이름 자체가 신기하고 놀라서 묻는 말 ‘이게 뭐냐?’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 삶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40년간 이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은총은 지금도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영의 눈을 떠서 보십시오.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호흡, 때에 따라 내리는 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온통 놀라운 하나님의 ‘만나’의 손길입니다. 믿음의 눈을 뜬다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신령한 가나안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매일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감탄하며 ‘만나’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진 한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이 불행한 어린이를 부모는 아주 어렵게 키웠습니다. 다행히 의술의 발달로 15살이 될 때 수술을 하여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눈을 뜨고 보는 이 세상은 신비롭다 못해 이상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어느 날 이 소년을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15년 만에 보는 자연의 세계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소년은 어머니에게 원망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하면서 따져 물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울먹이며 "난들 왜 말해주고 싶지 않았겠느냐. 말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내가 설명을 한다 해도 네가 알아들을 수 있었겠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령한 눈이 없다면 하나님의 경이로운 사건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루하루를 마지못해 살아가면서 불평할 뿐입니다. 매일 똑같은 날인데 뭐가 경이롭고 놀랍냐고 시큰둥합니다. 자신에게는 기쁨도 즐거움도 없다고 말합니다. 영의 눈을 열어서 저 푸르고 높은 하늘을 보십시오. 저 웅장한 산들을 보십시오. 저 광대하고 심오한 바다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심오하고 경이로운 세계가 보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을 칭찬하신 이유 중 하나가 이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린이들은 이런 경이로움을 볼 수 있는 순수한 눈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세계가 온통 경이로움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게 뭐야?" 라는 계속되는 질문으로 엄마를 귀찮게 합니다. 보는 것마다 "엄마 이게 뭐야, 엄마 이게 뭐야?"라고 묻습니다. 아이 눈에는 보이는 것마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이지요. 이렇게 아이들은 매일 ‘만나’를 경험하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이게 뭐야?"에서 "에게 게 이게 뭐야?"가 됩니다. 어른들은 웬만한 일도 실망하고 하찮다고 느끼고 비아냥거립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인도 하심 앞에서, "우와! 이게 뭐야?"로 놀라움에 가득한 감탄의 삶을 사십니까? 아니면, "에 게게 이게 뭐야?" 하는 원망과 탄식의 삶을 사십니까?


  믿음의 태도에 따라 삶이 경이로울 수도, 지긋지긋할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만나’라도 꿀 섞은 과자도 될 수 있고, 형편없고 지긋지긋한 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평에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만나가 지긋지긋한 음식이었듯, 세상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은혜도 그저 당연한 일일뿐, 조금도 놀랄 일도 경이로운 것도 못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이야기 일뿐입니다. 십자가 사건도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해 보일 뿐입니다. 우리가 사는 매일의 삶도 마찬 가지입니다. 경이로운 눈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매일의 삶이 새롭고 놀랍습니다. 오늘이 노상 있는 그 오늘이 아닙니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3년 동안 매끼를 다른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한 번 먹은 것은 맛이 없어서 더 이상 못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궁중 요리사들이 전국에서 온갖 음식을 다 동원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중국 음식의 가지 숫자가 어마어마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입맛이 없는 것은 모르고 며느리 손재주만 타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입맛이 없으면 아무리 맛있어도 맛이 없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을 살아도 경이롭게 바라보면 늘 새로운 날입니다. 그런데 불만으로, 원망으로 보면 늘 그 밥에 그 나물인 것이지요. 날마다 그게 그거지 뭐가 다르겠습니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의미 없고 지긋지긋한 삶이 되겠지요. 매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매일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믿음에 따라 매일 똑같은 지겨운 삶이 되기도 하고, 매일 다른 신비로운 삶이 되기도 합니다. 한평생 인도하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십시오. 그 길이 사람 살 수 없는 광야 길이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막에 샘이 터지고 광야에 만나가 내리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 광야 같은 삶에서 신기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것입니다.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경이로운 삶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