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하신 창조주로서, 왜 구태여 그 무한대의 우주 가운데에서 이 지구에 태어나셨을까요? 지구보다 수백만 배 큰 별도 있는데 하필이면 이 작은 별에 태어나셨을까요? 그리고 왜 사람으로 태어나셨을까요? 위대한 것을 말한다면 구태여 지구로 올 것이 없고, 사람으로 올 것도 없지 않습니까? 저는 결론적으로 그분이 인간으로 오신 것은 탐욕의 상징인 사탄을 멸하기 위해 오셨다고 믿습니다. 인간을 타락시킨 사탄의 정체는 구체적으로 탐욕입니다. 바로 이 탐욕이 우리 인간으로 죄를 짓게 하고, 그 탐욕이 죽음을 가져오고, 그 탐욕이 모든 생명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 근원적인 뿌리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이 되어 오신 목적은 인간의 탐욕을 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탐욕을 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니까요. 요한일서에서 말한 사랑이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되고 생명이 되고 빛이 되는데, 바로 그 사랑이 들어와서 이 탐욕을 내몰 것이라고 합니다. 빛이 어둠 가운데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가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에 들어왔다는 말은 바로 이 탐욕이 물러가고, 사탄이 지배하던, 탐욕에 의해 움직이던 이 생활이 사랑에 의해 움직이도록 바뀐다는 말이고,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특성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을 버린다고 하는 것은 소극적인 이야기이고, 그 자리에 사랑이 들어와서 탐욕을 물러가게 만든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것은 무소유가 되는 것, 산 속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이 창조한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빛은 어두움 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빛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 사랑은 하나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행동하는 사랑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간의 욕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가 질적으로 바꾸어 지는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과 우리 공동체를 위해 다른 데 것을 다 끌어 모으는 그러한 욕구가 변하여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다 내어주고 싶은 욕구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루고야 말겠다고 하는 성취욕 같은 것이 없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의욕이라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있습니다. 목적이 사랑에 있고, 의욕, 욕구는 사랑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곧잘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리고,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 수단으로 떨어져 버리는데, 그것이 곧 죄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입니다.


  20세기에는 핵무기, 생태계의 파괴, 이런 것들이 우리를 무섭게 만들었지만, 21세기에는 유전공학, 로봇 공학, 이런 것들로 인해 아마도 2030년대 들어가게 되면 우리의 생명을 완전히 파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 과학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다 포기해 버려야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걸 가지고 있는 한 인류는 멸망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러한 첨단 과학기술이 사람과 이 세상의 생명을 위해서 봉사하고 사랑하는 도구가 될 때, 그러한 과학은 얼마든지 발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나 자신 속에 탐욕이라고 하는 것이 쫓겨나가고 내 욕구라고 하는 것이 사랑을 향해 나를 몰아가게 될 때에 인간은 존엄한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설교하던 선교사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들에게 전도했습니다. 열심히 전도해서 이 식인종들과 말이 통하게 되었는데, 그 식인종들에게 사람을 잡아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열심히 하니까 그들이 리빙스턴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배고프니까 먹기 위해서이지만, 당신들은 왜 먹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많이 죽이느냐. 아프리카에 와서 수만 명, 수십만 명을 마구잡이로 죽이는데 먹지도 않으면서 죽이더라. 그건 왜 그러느냐?”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심으로 인해서 상대를 파괴합니다.


  이 탐욕을 버리지 못할 때 목마른 사람이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권력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나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권력이 국민을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수단, 사랑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을 때 문제가 됩니다. 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필요한 만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 모으는 것 자체에 눈이 어두워 남의 것을 다 빼앗고 독점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땅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우리에게서 탐욕이 계속해서 나를 흔들겠지만, 주님이 항상 내 안에서 나를 타일러 주시고, 내가 잘못된 길로 가면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교회가 이러한 탐욕적인 역사 속에서, 다 파괴되어 가고 있는 역사 속에서,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성육신한 예수의 몸으로 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개인이나 교회가 이런 깊은 자각을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