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문학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야와 자카난(Jachanan)이란 랍비가 길을 걸어가다가 밤이 되어 한 가난한 사람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집의 가장 귀한 가보는 소 한 마리였습니다. 가난한 부부는 손님을 늘 반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밤늦게 찾아온 이 두 사람을 기쁘게 맞이하고 정성을 다하여 섬깁니다. 엘리야와 랍비는 우유와 빵을 잘 대접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좋은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한편, 가난한 주인들은 부엌에서 잠들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난한 사람의 가보인 소가 죽어 있었습니다. 엘리야와 랍비는 슬퍼하는 가난한 부부를 위로하고 또 길을 갑니다. 다음날 밤에는 아주 부자 상인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 상인은 차갑고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상인은 두 손님을 푸대접합니다. 빵과 물만 주고는 외양간에서 자게 합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감사하다고 말을 전합니다. 그런데 밤에 엘리야는 외양간 벽에 허물어지는 부분을 발견했었습니다. 외양간 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던 엘리야가 가만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미장이를 불러서 벽을 수리해 주었습니다. 엘리야는 상인이 하룻밤 재워 준 것에 대한 답례를 한 것 같습니다.
랍비 자카난은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엘리야에게 그동안 되어 간 일들을 따져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자기들을 정성껏 섬긴 가난한 집의 소는 죽을 수밖에 없었고, 자기들을 박대한 부자 상인에게는 벽을 고쳐 주었느냐고 묻습니다. 엘리야는 입을 열어 대답합니다.
"사실 그날 밤 가난한 집의 부인은 죽게 되어 있었다네. 그런데 그들의 선행으로 인해서 대신 소를 죽게 한 것이지… 그리고 부자 상인의 집에 관해서 말한다면, 사실 벽 속에 금궤가 놓여 있었다네. 만일 그 구두쇠가 벽을 고친다면 그는 금궤를 발견할 수 있었지. 그래서 내가 그 금궤를 꼭꼭 숨겨버리기 위해서 고치게 한 것일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의로운 것일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부부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난한 부부는 손님을 잘 대접하고 나서 가장 귀중한 소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때 부부들의 마음을 우리는 가히 짐작할 만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원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께 따지겠다고 벼르고 별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를 잃은 이 가난한 부부가 나중에 엘리야가 부자 상인의 집 벽을 고쳐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정성껏 섬긴 자기 집에서는 소를 빼앗아 가시던 분이 푸대접한 상인, 게다가 돈도 많은 상인을 위해서는 벽을 고쳐 주시다니! 더욱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가난한 부부의 마음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늘 송년예배를 맞아,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성경 요한복음 1장 16절을 보면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만난 주님은 '충만' 그 자체였습니다. 3년간 공생애의 삶 속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충만'을 예수님 안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충만이 시간 시간마다 자신의 삶 속에 임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은혜 위에 은혜더라." 그런데 정말 요한이 3년간 예수님을 따르는 동안 매순간 순간 은혜 위에 은혜의 삶이라 생각하면서 따랐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도망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계속된 수많은 실수를 안고 이제 여생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에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보면서 예수님 안에서의 자신의 삶을 묘사합니다. 그것은 '은혜 위에 은혜'의 삶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은혜 위에 은혜로 바꿀 수 있는 '충만'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가난한 부부가 엘리야를 만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어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소? 우리의 선을 악으로 갚으셨소?" 이때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올해가 자네 부인의 마지막 해였는데 자네의 선행으로 소를 대신 죽였네." 그때 그들의 반응은 어떠할까요?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은혜로 감싸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감격하고 찬양하며 노래할 것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더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해를 보내는 이 시간에도 우리 안에는 평생 살아도 풀리지 않을 많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오늘 우리에게는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주어져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더라." 한 해 동안에 되어 진 모든 일을 안고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우리가 올해도 은혜 위에 은혜의 해였음을 노래한다면, 모든 역경 가운데서도 도리어 축제의 제목을 발견한다면, 충만케 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기대한다면 금년은 은혜 위에 은혜의 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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