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노인 중에 흔히 지난날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잘 살던 것, 과거에 슬프고 아팠던 것에 얽매어 날마다 탄식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과거를 다시 들추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이 중요하고 내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앞만 보고 뛰어야 하는 것처럼 하늘나라를 향하여 어른 세대는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이 가까울수록 젖 먹을 때 힘까지 다 내어 달리는 것처럼 신앙의 경주를 그렇게 잘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의 나이가 70에서 80에 이르는 노인 세대는 옆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남은 날이 머지않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 하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젊은 사람보다 이 세상을 떠날 확률은 90% 이상이지 않겠습니까?
특히 지금까지 나름대로 잘 달리다가 골인지점에 가서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젊을 때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늙어서 뒷짐을 지는 사람들이 더러 있더군요. 인생은 가운데가 높은 포물선 그래프를 그려서는 안 됩니다. 시작은 미미해도 점점 높아지다가 마지막에 클라이맥스를 올리고 끝을 내야 바람직한 인생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원에 품 꾼을 들여보내는 비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한 시간을 남겨 놓고 포도원에 들어온 품 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때 그 사람이 이른 아침부터 포도원에 일하러 온 품 꾼보다 먼저 품삯을 받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찌해서 그 사람이 먼저 품삯을 받았을까요? 마지막 한 시간을 남겨 놓고 포도원에 들어갔을 때 그는 늦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남은 한 시간을 분초를 다투며 일을 했습니다. 주인이 와 봤을 때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맨 나중에 포도원에 들어온 품 꾼이었습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 우리 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했을 때, “내가 교회를 너무 늦게 나왔구나!” 하시면서 제가 목사가 될 때까지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다가 제 무릎에서 하나님 품으로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주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그때 충성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렸느냐, 예수를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 실적을 얼마나 많이 올렸느냐 만을 보시지는 않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 그 시간까지 내가 세상 떠나는 그날, 그 시간까지 힘 있게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죽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평안하게 죽어야 할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신세를 끼치지 않고 죽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한 시라도 더 살기 위해 병원 기계의 힘을 빌어야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음식도 먹을 수 없어 호스로 영양분을 주입시키면서 식물인간으로 3년 이상 고생하다가 죽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 지쳐서 마지막에 인공호흡기를 떼라고 해서 숨을 거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원까지 가는데 두 시간, 오는데 두 시간, 3년을 그렇게 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도 자식도 찾아오지 않고 병원직원들이 돌보다가 외롭게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러한 지경에 이른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가족들과 상의해 놓거나 결정해 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무슨 말을 남기고 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말도 정신 맑을 때 연습해 두어야 합니다. 이왕이면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처럼 스데반처럼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후손들에게는 무슨 가르침을 남기고 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할 말을 해야 합니다. 남이 해줄 수 없는 말입니다. 당연히 보여줄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남이 보여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저주받는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계명을 지키면 살고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새로운 사조의 물결이 밀려와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유럽의 부모들이 자녀세대에게 이 가르침을 침묵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처참해진 모습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말년에 모압 평지에서 십계명을 낭독했습니다. 그것은 40년 전 그가 시내 산에서 받은 그대로였습니다.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않았습니다. 계명대로 살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계명대로 살지 않은 너희 조상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건강하게 살아남아 있는데 너희의 다른 조상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실물교훈인 샘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60만 장정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었다고 외쳤습니다. 나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너희 조상이 범죄 할 때 나도 그중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2세, 3세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너희는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번성할 것이다. 너희는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는 환난을 당할 것이다. 너희는 죽음을 맛볼 것이다. 너희는 흩어질 것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향하여 담대히 예언을 해야 합니다. 이 예언은 내일 일을 알아서 맞추는 점쟁이가 하는 예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부르짖을 때에 애굽에서 구원함을 받았으나 광야에서 원망하다가 불 뱀에 물려 죽었다. 이러한 실례가 장래에도 그대로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우리 세대에 장래를 말하는 예언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2세 3세들이 나아갈 방향을 바로 잡을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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