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기술문명은 그 매혹적이고 달콤한 효율성과 편리함과 신기함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넋을 잃고 그 편리함에 빠져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신속함과 편리함을 맛본 현대인들은 그 자동차를 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온갖 공해발생의 요인이 되고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교통사고의 원인이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자동차를 폐기할 수는 없습니다. 텔레비전의 발명은 더욱 우리를 사로잡아 매일 몇 시간씩 그 앞에 우리를 붙잡아 앉혀 놓는 것입니다. 컴퓨터의 신속함과 편리함과 신기함에 사로잡히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하루종일 그 앞에 붙잡혀 넋을 잃게 마련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이런 생활의 편리함을 더해 주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거기에 넋을 빼앗기고 그 기술문명을 하나님처럼 떠받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넋을 잃고 있는 동안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우리의 영혼은 메마르게 되며, 각박하고 약삭빠른 이기적인 인간으로 변질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생각은 없고 기술문명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는 로봇 같은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술 문명의 달콤함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에게서 생명력을 공급받아 영혼이 살아 움직이며 생각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기술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의 삶을 기도를 통하여 돌이켜, 하나님의 질서와 그 원리에 따르는 삶으로 바꾸어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할 때에는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우리가 가난하였고 필요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경제가 발전하면서 온갖 기술문명의 혜택을 우리에게 가져다주게 되자, 우리는 기도하기를 멈추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하던 모든 것들이 대체로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넉넉하고, 기도하지 않아도 병을 고칠 병원이 많아졌으며, 기도하지 않아도 효율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가난하였을 때 드린 기도가 잘못된 기도임이 드러났습니다. 기도란 궁핍할 때 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그런 수단으로 이용하여 왔기에 이제 그 필요가 충족된 지금에 와서는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상황이 불안하고 어려울 때만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기도하게 하시므로 우리의 삶을 활기에 넘치게 하시며, 지혜롭게 하시며, 온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숨 쉬는 것처럼 항상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아쉬울 때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진정한 삶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쉬울 때만 기도하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기 위하여 때로 우리를 고난 가운데로 몰아넣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고난을 통해서 기도를 배우게 되고, 고난이 지난 후에도 기도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며, 거기에 참된 삶의 길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지난날 드린 기도는 교회성장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다분히 기복적인 기도가 그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그 기도가 시들해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늘과 같은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얍복 강가의 야곱처럼 다시 하나님 앞에 나가 무릎을 꿇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지난날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이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와 불안 때문에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으면서 거기에 응답하기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경제적인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기도를 드릴 것이 아니라, 기도를 잊었던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기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때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한 실업과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날 기술 문명에 의해서 지배되었던 우리의 영혼을 되살리고, 잃었던 정신을 되찾기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경제 성장 논리에 이끌려 정신없이 따라갔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삶으로 일관되었던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들과 함께 만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고난주간 새벽 사경회는 이를 위해 주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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