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가난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가난을 벗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일찍 돌아가셨다고 하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절고 계셨는데 나물을 캐고 다듬어서 시장의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나는 잘 먹고 잘 입지는 못했지만 악착같이 공부했지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4교시 수업이 끝날 때에 친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복도를 보니 낯익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절뚝거리면서 교실로 들어오시고 계셨어요. 어머니는 시장에 내다 팔려고 다듬은 나물 한 봉지를 들고서 찾아오신 겁니다. 그러자 학급의 다른 아이들이 어머니의 절뚝거리는 흉내를 내면서 나에게, “야, 네 엄마 병신이었냐?”하며 비아냥거리는 거예요. 순간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와~” 하며 낄낄대며 웃더라고요. 나는 참을 수 없어서 그중 한 녀석을 깔고 앉아 정신없이 두들겨 패줬지요. 그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잘 차려입은 아주머니와 내게 맞은 녀석이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며 호통을 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애비 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 거야? 못 배우고 없는 티 내는 거야 뭐야. 자식 교육 좀 잘 시켜. 어디 감히 우리 집 귀한 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 으응?. 어머니라는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 정신이 온전하겠어?” 부잣집 아주머니가 내뱉은 듣기 거북한 말을 듣고서도 어머니는 연방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느 것 하나 당당하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어요.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나를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 **야, 네 어머니께 어제 주신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전해주거라.”


  그 후 17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처가에서 병원도 개업해 주고 너무나 풍요한 생활을 하면서 나는 어머니를 잊고 살았어요. 솔직히 잊고 싶었던 겁니다. 어머니에게는 매달 생활비를 보내드리기는 했지만 한 번도 찾아가 뵙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우리 집 앞에서 한 노인과 가정부 아주머니가 싸우고 있는 거예요. 야윈 얼굴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노인이었는데 다리를 절고 있었지요. 그 노인은 바로 저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기뻐하면서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셨습니다. 가정부가 보고 있는지라 나는 차가운 말로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제 어머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힘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돌아섰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자, 가정부는 “별 노망든 할머니가 다 있다.”라며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 후에 나는 한 달 동안 잠자리가 편치 않았습니다. 시간을 내어 혼자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갔지요. 어머니는 내가 생활비를 보내주었지만 여전히 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고 계셨습니다. 나는 어머니 주변에 몸을 숨긴 채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그때 나물을 사려는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할머니,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하고 물었어요. 어머니는 “아니여. 우리 아들은 서울 큰 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 디. 내가 싫다고 혔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식 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 거 뿌리치느라고 혼났구만. 우리 아들 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 하며 자랑하시면서 나물을 담아 주고 있었어요.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고도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머니가 살고 있는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집에 들러 방 틈으로 돈 봉투만 던져 놓고 돌아왔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1년이 지날 무렵이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에게 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내려오라는 부고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에 시장에 들렀는데, 정말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어요. 집에는 선생님 혼자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나에게 어머니가 쓰시던 보따리를 주시면서 “풀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보따리를 풀어 보니 돈이 있었습니다. “이거, 돈 아닙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동안 네가 돌아오면, 혹시나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모아두신 돈이란다.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기다리셨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 하시더구나. 내가 가끔 네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드렸는데, 나에게 네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도록 부탁하셨단다.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도 함께 말이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적이었다. 너를 키워주신 부모님이 퇴근길에 집에 오는데, 핏덩이였던 네가 집 문 앞에 버려져 있었단다. 마침 너의 부모님은 자식이 없던 터라 너를 데리고 가서 키우기로 했단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너를 데리고 와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다고 하셨다. 어린 너를 혼자서 집에 둘 수 없어서 항상 공사판에 데리고 다녔는데, 네가 무너지는 철근 밑에 있는 것을 보고 네 목숨이 위험하게 되자 네 부모님이 뛰어들었단다. 그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게 되셨단다. 그러니 너는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다리 덕에 살아났다는 거야. 다리를 다쳐 벌이가 시원치 않아 생활이 어려울 거라고 염려하던 주위 사람들이 네 어머니에게 키워봤자 소용이 없으니 고아원에 보내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듣고도 너를 버리지 않고 당신의 목숨보다 귀하게 키웠다는 거야. 네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에 네 어머니는 암이 걸리셨는데, 그것을 알고도 네 학비를 대기 위해서 병원에 가지 않으셨단다. 그리고 네가 암 전문의가 되어 명성을 날리자, 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너를 보려고 물어물어 서울에 올라가셨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집에 내려오셨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에 나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숨 쉬게 된 것은 생명을 비롯한 가장 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이 영원한 죄와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