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미션은 끝나지 않았다!(2020.01.19)

  미션(mission)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거의 순간적으로 영화 <미션>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오래전에 본 영화이지만, 개인적으로 다시 보고 또 봐도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닌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여운이 가슴에 더 애잔하게 남는지도 모릅니다. 롤랑 조페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거대한 이과수 폭포의 장관(壯觀)과 함께 막이 오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 중심에는 남미 과라니족에게 선교하기 위해 찾아온 예수회 소속의 두 사제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의 사제와 한때 악랄한 노예상이었다가 회심한 로드리고 멘도자라는 사제입니다. 두 사제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되어 가던 이 마을 원주민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치적 흥정으로 말미암아 다시 노예로 살아갈 위기에 처하게 되자, 쳐들어오는 군대의 무력공격 앞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저항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사제 가브리엘은 무저항을, 로드리고는 무력 저항을 선택합니다. 종국에는 무저항을 선택했던 가브리엘도 총과 칼을 들었던 로드리고도 모두 흉탄에 죽고 맙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이 마무리되면서 자막으로 보여준 성경 요한복음 1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때가 아직 낮임에 나를 보내신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그분의 미션을 선언하십니다. 보냄을 받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 그것이 바로 미션이 아니겠습니까. 영어에서 미션(mission)이란 단어는 본래 라틴어 미시오 (missio)에서 유래된 말로 원래의 의미가 단순하게 보냄 (a sending)입니다. 그러므로 미션은 보냄을 받은 우리의 사명을 뜻합니다. 미션이 우리의 사명이라면 한 번의 섬기는 것으로 우리의 사명이 끝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영화 미션에 보면 비극적인 사건의 종말을 취재하던 교황청에서 파송된 주교가 영화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신부 몇 사람과 과라니족 대부분의 멸종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들이 전한 복음의 미션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는 한 미션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살아남은 과라니족 아이들이 줄 끊어진 바이올린을 들고 쪽배를 타고 더 깊은 정글로 숨어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막을 내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미션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명을 위임받은 우리가 살아 있고 그 미션을 기다리는 이웃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기는 한 말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 곁을 스치는 이웃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바라보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동자가 이미 비전을 잃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생을 걸고 바라보아야 할 진정한 대상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걸로 연명하는 맹인이요, 앉은뱅입니다. 누가 그들에게 나아가시겠습니까? 누가 그들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겠습니까? 누가 그들의 깨어지고 상한 마음을 만져주겠습니까우리가 그들에게 나아가 먼저 창조주가 누구인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자동차 정비공장의 인류 정비사가 차를 몰고 출근하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갓길에 차를 놓고 원인을 찾는데 도대체 찾을 수 없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한참 고생하고 있는데 지나던 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한 신사가 내리면서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정비사는 마음속으로 인류 정비사인 내가 못 고치는 것을 당신이 누군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사는 몇 군데를 만져보더니 시동을 걸어 보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시동을 거는데 단번에 시동이 걸렸습니다. 정비사는 놀란 표정으로 선생님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사는 그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네주고 떠나갔습니다. 그 명함에는 헨리 포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고장 난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왜 성경 창세기는 창조주 하나님으로 시작하고 있을까요? 왜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창조주라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을까요? 그분이 창조주이심으로 피조물이 된 인생의 해답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예수님이 그들의 구세주이심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영의 눈을 뜨고 구원을 경험하려면 예수님이 창조주이심을 아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습니다. 한 단계 더 나가서 그분이 구세주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구세주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치유자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이가 또한 우리를 고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치유하고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맹인의 맹인 된 원인을 밝히는 신학적 논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벌이는 논쟁의 주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까? 자기니까? 그의 부모니까?’(9:2) 이런 문제에 대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해답을 얻었다 한들 그 당사자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접근법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토론하고 논쟁하는 대신 창조주의 손을 내밀어 그의 눈에 진흙을 발라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진흙과 하나님의 침을 이겨 창조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벵겔의 해석). 예수님이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9:7)고 했습니다. 실로암의 뜻은 무엇입니까?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우리의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아서 오신 분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보낸 유일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17:3). 우리의 미션은 예수님이 우리의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것을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제 그 사명을 위해 우리가 눈을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구원의 확신이 서야 하고, 그 감격으로 그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미션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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