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다르게 역사하는 마귀의 궤계(2020.01.12)

  몇 해 전에 윤회설을 주장하는 한 종단의 대표적인 승려가 죽음 앞에서 ‘자신은 수많은 선남선녀를 속이고 악을 행했으니,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라고 하는 슬픈 말을 토한 일이 있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철학을 섭렵하고 평생 수련을 했으면서도, 자신의 신앙이 결국 사탄의 일이라고 토로함으로 양심선언을 한 것입니다. 사탄은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수많은 이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자녀 됨을 손상 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자로 일하거나 일생을 허비하게 하고 있습니다. 본래 사탄은 위장술에 능하여 때를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변신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에 순간 속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사회변화가 급변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사탄의 미혹도 이 시대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지키면서 주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도 미혹하는 영이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6장 21~23절을 보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잡히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하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 “그리 마소서.”하고 가로막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책망하십니다. 주의 일을 무너지게 하는 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순간적으로나마 베드로는 사탄의 도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 마귀는 교묘하게 속이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시대마다 다르게 역사하는 사탄이 요즈음에는 어떤 궤계로 역사하는지 밝혀내어 속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감성을 의존하게 하는 신앙관으로 속입니다. 요즘 시대는 감성의 시대라고 해서 모든 일에 감정을 중요시합니다. 전에는 부부가 그저 서로 믿고 살았지만, 지금은 감정이 변하면 사랑이 식은 것이라고 판단해서 다투고 갈라지는 시대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그런 일들이 생깁니다. 그러나 기분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은혜로 마음이 시원한 것은 좋으나 시원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린다거나 기도를 한다는 것은 바르지 못합니다. 감정을 예배의 성패의 기준으로 삼으면 잘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마음이 시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를 감정으로 신앙 생활하게 충동질합니다. 기분 나쁘면 교회 안 나가고, 기분 나쁘면 봉사도 그만두고, 헌금도 기분에 따라 드리기도 하고 안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언제든지 넘어질 가능성이 크고 참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란 감정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말씀을 따라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감정의 변화에 따라 드려지기도 하고 드려지지 않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합당하게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것도 기분으로 느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이 시원해지면 용서받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니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죄 사함은 진리의 말씀이 그렇게 하였다고 말씀하신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내 기분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분이 “너희 죄가 사해졌느니라”라고 하셨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사탄은 또한 고난을 의심하게 하는 신앙관으로도 속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되는 일도 없고, 막히는 일이 없이 살 것으로 생각합니다. 걱정거리도 없고 근심이나 고민은 전혀 없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우들 가운데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설명을 하지 않고 숨기는 이들을 봅니다. 그분들은 “내 기도가 부족해서, 내 믿음이 약해서 이런 거지, 열심히 믿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야. 다 내 잘못이야…”하고 아무 일 없는 척합니다. 그러다가 임계점에 이르면 믿음을 버리는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차피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누구나 음악 시간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선생님이 음악을 가르치거나 가곡을 가르쳐서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그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어난 유럽의 레지스탕스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3년을 졸업한 덕분에 그 학교 학생들은 그 아름다운 가곡이나 노래들은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도리어 시간마다 쪽지시험을 보고 수업 시작 전에 시험을 보던 선생님이 가르치던 과목, 학생들을 들들 볶아서 괴롭혔던 분들의 과목이 그 학생의 미래에 도움이 됩니다. 고난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교묘한 사탄의 전술입니다. 그러므로 만사형통만이 신앙인 것처럼 말하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을 실망하게 하는 신앙관도 미혹의 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변하지 않는 기질을 볼 때마다 낙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계략 중의 하나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그런 성품까지도 합당하게 사용하십니다. 바울이 한번은 바나바와 다투었습니다. 전도 여행을 하면서 마가를 데리고 갔는데 그가 중도에 돌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몹시 화가 나서 그다음에 떠날 때는 그를 빼 버리자고 했습니다. 그 일로 바울은 바나바와 다투고 실라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후회하고 마가를 사랑했습니다. 바울의 성질이 변해서 순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바울의 그런 성품이 그 험하고 위험이 깔려 있는 소아시아와 그리스,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기질이 변한 것이 아니라 기질의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나쁜 일을 위해 쓰이던 기질이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는 습관으로 사람을 전도해서 하루에 수천 명씩 전도했습니다. 요한은 그물을 깁는 일을 하다가 교회를 돌보고 양육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마태는 장부를 정리하는 글쓰기를 통해 주님의 일생을 기록했습니다. 시대마다 다르게 역사하기도 하지만, 요즈음은 어떤 마귀의 궤계가 있는지 밝혀내어 속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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