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잡아서 무서운 것이다!(2020.03.29)

  한 트럭 운전사가 초상집에 관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받고 트럭에 관을 싣고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면서 태워 달라는 표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착한 운전사는 그를 태워주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을 태우고 트럭 운전사가 운전하고 가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트럭 위에 타고 있던 사람이 피할 수가 없어 관 뚜껑을 열고 관속에 들어가 뚜껑을 덮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비도 안 맞고 하니까 그 관 속에서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또 다른 두 사람이 태워 달라고 손을 흔들자 착한 운전사가 트럭을 세우고 두 사람을 더 태워주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좋다고 관 옆에 타고 있었습니다. 한참 가다가 관속에 있는 사람이 잠이 깨어나자 관 뚜껑을 열고 쓱 일어나니까 이 두 사람이 기절초풍하고 트럭에서 뛰어내려서 한 사람은 바퀴에 치여 죽고 한 사람은 굉장한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답니다. 사실을 알았다면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관속에서 사람이 나오니까 혼비백산해서,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두려움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큰 것이 아닌데 지레 겁을 집어먹고 도망을 치다가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 때 최초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태 속에서 비교적 평안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세상으로 밀려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막과 같은 세상, 광야와 같은 세상으로 내팽개쳐진 것입니다. 주위 환경으로부터 모든 것이 낯설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인간의 두려움은 시작됩니다. 버림받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나 혼자라는 두려움, 질병의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 우리를 계속해서 위협해 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혹은 행복한 삶을 살수도 있고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왜 두려워하십니까? 정말 그 두려워하는 실체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보면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은 누가 준 것입니까? 그 두려움의 근원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진정한 실체는 무엇입니까? 성경 창세기 39~10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하자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두려움은 인간의 죄로부터 발생한 것입니다. 죄의 근원은 사탄입니다. 두려움은 바로 사탄이 준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갈 때, 두려움이 인간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 두려움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떠나면 바로 두려움이 우리를 엄습해 옵니다. 한순간이라도 그분을 의지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우리를 삼키려고 달려듭니다.

 

 

  저희 큰애는 인문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생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대학에 가서 전공을 열심히 공부해보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자기가 평소에 좋아해서 관심이 많았던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서 직접 차를 몰아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나라가 정한 법정 연한이 있었고 부모가 대학 가기 전에는 운전할 수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운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질 수 있다는 저희 생각 때문입니다. 지적인 능력과 침착성과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그때가 되어야 성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게임기로 운전을 해보았기 때문에 넓은 NATO 사령부 운동장에서 나 몰래 운전을 배웠습니다. 그렇다고 운전면허를 따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해서 운전대를 맡겼다가는 큰 사고를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만한 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는 것은 곧 사고가 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마치 열 살짜리가 위험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든다고 애를 쓰지만, 인간사회에는 언제나 무섭고 끔찍한 범죄와 사고로 가득 차 있음을 봅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힘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샴페인을 터트리지만 어쩐 일인지 전쟁과 난리 소문은 점점 더 크게 들려올 뿐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나선 결과가 아닐까요?

 

  신음하는 자연계를 보십시오. 최근에 와서 전 세계적으로 기후의 이상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공해로 인해 지구의 오존층이 파괴되어 태양이 내뿜는 자외선이 지구로 곧장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창조 이래로 변함없이 지속되어 오던 기후가 최근 1세기 만에 그 균형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20세기는 실로 인간에게 놀라운 발전과 획기적인 기술 문명을 발달시켰습니다. 모든 것이 거의 기적에 가까울 만큼 개발되었는데 문제는 환경이 엄청난 파괴로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운전하려 했던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라는 자동차를 잘 운전하고 잘 관리해야 하는데, 무면허 운전사인 열 살짜리 인간이 마구 몰고 다니는 것 같아서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피해야 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세워야 할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차 안에서 운전하는 무면허 운전사는 커다란 두려움이 휩싸여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오히려 여기저기에 부딪히는 사고만 날 뿐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두려움의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살아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난 것이 바로 문제의 시작입니다. 결국은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잡아서 두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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