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2021.11.21)

  어떤 알코올 중독자에게 아들이 셋 있었습니다. 견디지 못한 부인은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웃의 신고를 접한 행정복지과에서는 도저히 세 아들을 키울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해서 이 아들들은 각각 다른 집들로 입양을 보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다음, 세 아들의 행방이 궁금해서 복지과 직원이 추적했습니다. 과연 이 세 아들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첫째 아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 그런데 그는 아버지와 똑같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당신마저 이렇게 살 수 있단 말인가?" 그 아들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인데, 어떻게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안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父傳子傳이라는 말이 맞는 듯합니다. 부모가 본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지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도 할 수 있겠지요.


  이번엔 둘째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 그런데 동생은 형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 자녀들과 함께 아주 단란한 가정을 가꾸면서 행복하게 잘 살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아버지와 형님과는 전혀 다르게 살 수 있습니까?" 그때 그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사셨는데, 내가 어떻게 똑같이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他山之石이란 말이 맞는 것입니다.


  셋째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 그런데 그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되어서 모 대학병원 교수로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내용을 들어보니, 아기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지냈는데, 또 큰 형이 아버지의 뒤를 따라 알코올 중독자로 수용소에 가는 것을 보고, 왜 이런 현상이 우리 집 안에 있어야 하는지 궁금하여 연구하다가, 우리 가문처럼 불행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연구하여 이런 사람들을 돕고자 의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 아들이 살아온 삶의 조건은 똑같습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도 판이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 아드님은 똑같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받고, 똑같이 처절한 환경 속에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가 된 것이 너무나 당연한 노릇이라 생각했지만, 또 다른 두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 한 아들은 자기의 어린 시절처럼 불행한 나날을 보내는 가정들을 돕고자 알코올 중독 치료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각의 차이, 판단의 차이는 결국 삶의 결과까지도 엄청나게 차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바뀌는 법입니다. 잘 선택을 해야 합니다. 바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행복과 미래는 판단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결코 운명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환경을 탓하며 원망과 불평을 하며 자신은 물론 함께한 사람들까지도 망치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까? 아니면, 환경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축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과 행복의 삶을 선택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지금 환경이나 조건, 외모나 가진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풍자적인 잡지의 이야기입니다. 한 이발사가 정성껏 이발을 끝내자, 목사님은 감사하다고 말하고 이발비가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이발사가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를 하였다고 생각해서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하는 수 없이 그냥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이발사가 가게 문을 열었을 때, 목사님이 보낸 감사의 편지와 꽃다발을 발견했습니다. 며칠 뒤 경찰관이 이발관을 찾아왔습니다. 이발을 끝내자 경찰관도 감사하다고 하면서 이발비가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역시 이발사는, “경관님, 저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를 하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경관님에게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이발사는 경관이 보낸 감사 편지와 함께 도넛을 문 앞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 이발관에 그 지역 정치인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이발사는 이발을 끝낸 그 정치인에게도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국가를 위해 봉사를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도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발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정치인이 머리를 깎으려고 줄을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유형의 사람이 지상에 존재한다는 말을 풍자로 한 내용입니다. 한쪽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고, 또 다른 쪽은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감사를 잊고 살 만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살지 않습니다. 내가 주면서, 사는 것의 몇 갑 절로 늘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값진 것에 대한 빚을 지고 살고 있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값으로 매길 수 없어서 거저 받아야만 했던 것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태양, 공기, 자녀들, 우리를 핏덩어리로부터 키워주신 부모님, 우리의 이웃들, 교회 식구들 알고 보면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래서 늘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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